대념처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1.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쑤(Kurusu)에 있는 꾸루족의 마을 깜마싸담마(Kammassadhamma)에 머무시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하고 비구들을 불렀습니다. 비구들은 "예, 스승님!" 하고 세존께 응답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근심과 슬픔을 극복하고, 괴로움과 불만을 소멸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열반을 자증(自證)할 수 있는 유일한 청정한 길은 오직 네 가지 주의집중(四念處)뿐이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身)을 관찰하며 몸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하오. 
감정(受)을 관찰하며 감정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하오. 
마음(心)을 관찰하며 마음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하오. 
법(法)을 관찰하며 법(법)에 머물면서, 열심히 주의집중을 하고 알아 차려, 세간에서 탐욕과 불만을 제거해야 하오.

2.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이나, 나무 아래나, 한가한 장소에 가서 가부좌를 한 후에, 몸을 곧추세우고 앉아 앞을 향하고, 주의집중을 준비한 다음, 주의를 집중하여 들이쉬고, 주의를 집중하여 내쉰다오. 
길게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오. 
짧게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내쉬면서,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오. 
'나는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수습하고, '나는 온몸으로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수습한다오. 
'나는 신행을 고요히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수습하고 '나는 신행을 고요히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라고 수습한다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솜씨 있는 도공(陶工)이나 도공의 제자가 (흙덩이를) 길게 당기면서 '나는 길게 당긴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당기면서 '나는 짧게 당긴다'라고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오.
짧게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내쉬면서,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오.
'나는 온 몸으로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수습(修習)하고, '나는 온 몸으로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수습한다오.
'나는 신행(身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수습하고, '나는 신행을 고요히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라고 수습한다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안과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集法)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소멸하는 현상(滅法)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모여서 나타나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그러면 단지 알아차릴 정도로만, 단지 주의집중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집중이 일어난다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간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3. 비구들이여, 다음으로 비구는
가면서는, '나는 가고 있다'라고 알아차리고, 서있으면서는 '나는 서있다'라고 알아차리고, 앉아서는 '나는 앉아있다'라고 알아차리고, 누워서는 '나는 누워있다'라고 알아차린다오.
그는 몸이 취한 자세를 그대로 알아차린다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안과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集法)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소멸하는 현상(滅法)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모여서 나타나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그러면 단지 알아차릴 정도로만, 단지 주의집중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집중이 일어난다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간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4. 비구들이여, 다음으로 비구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 알아차리고, 바라보고 돌아볼 때 알아차리고, 구부리고 펼 때 알아차리고, 가사와 발우와 승복을 지닐 때 알아차리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알아차리고, 대소변을 볼 때 알아차리고, 가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 알아차린다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안과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모여서 나타나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그러면 단지 알아차린 정도로나, 단지 주의집중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집중이 일어난다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간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5. 비구들이여, 다음으로 비구는
이 몸을, '이 몸에는 머리카락, 털, 손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비장, 허파, 창자, 내장, 위, 똥, 쓸개, 가래, 고름, 피, 땀, 기름, 눈물, 비계, 침, 콧물, 활액, 오줌이 들어있다'라고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피부 속에 가득찬 갖가지 더러운 것을 낱낱이 관찰한다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갖가지 곡물들 즉, 쌀, 벼, 녹두, 콩, 참깨, 기장으로 가득 찬, 양쪽이 터진 자루를 안목 있는 사람이 풀어놓고, '이것은 쌀이다. 이것은 벼다, 이것은 녹두다. 이것은 콩이다. 이것은 참깨다, 이것은 기장이다'라고 낱낱이 관찰하는 것과 같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이 몸에는 머리키락, 털, 손톱, 이빨, 피부, 살 ,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비장, 허파, 창자, 내장, 위, 똥, 쓸개, 가래, 고름, 피, 땀, 기름, 눈물, 비계, 침, 콧물, 활액, 오줌이 들어있다'라고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피부 속에 가득찬 갖가지 더러운 것을 낱낱이 관찰한다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안과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모여서 나타나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그러면 단지 알아차린 정도로나, 단지 주의집중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집중이 일어난다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간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6. 비구들이여, 다음으로 비구는
이 몸을 있는 그대로, 취한 자세 그대로, '이 몸에는 지계(地界),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가 있다'라고 계를 낱낱이 관찰한다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솜씨 있는 소백정이나 소백정의 제자가 암소를 잡아 큰 사거리에 부위별로 나누어 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있는 그대로, 취한 자세 그대로, '이 몸에는 지계, 수계, 화계, 풍계가 있다라고 계를 낱낱이 관찰한다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안과 밖으로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물고, 모여서 나타나고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그러면 단지 알아차린 정도로나, 단지 주의집중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집중이 일어난다오. 그는 의존하지 않고 머물며, 세간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다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관찰하면서 몸에 머문다오.







- 출처: 이중표 '디가 니까야'


by stream45 | 2017/12/28 14:42 | 트랙백 | 덧글(1)

내 블로그에 이제야 들어옴

몇년 동안 비밀번호 문제 때문에 로그인 못해서 단념하다가 
무심코 와서 새로운 방법이 생겼길래 신청해봤더니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요.
몇년만에 여기에 글을 쓰게 되었네요.

by stream45 | 2017/09/02 12:01 | 트랙백 | 덧글(2)

중론 육계품


5. 6계(界)를 관찰하는 장[觀六種品]

[문] 6계(界)에는 각각 확정된 상(相)이 있다. 확정된 상이 있기 때문에 6계가 있다.

[답] 허공의 상(相)이 아직 있지 않을 때 허공은 없네.
만약 미리 허공이 있다면 상(相)이 없는 것이 되네. (1)

만약 아직 허공의 상(相)이 있지 않은데 미리 허공이 있다면 허공은 상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그러한가? 색(色)이 없는 공간[處]이 허공의 상이기 때문이다. 색은 지어진 것[作法]이기에 무상하다. 만약 색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니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그 때에는 허공의 상이 없을 것이다. 색에 의존해서 색이 없는 공간이 있다. 색이 없는 공간을 허공의 상(相)이라 한다.

[문] 만약 상(相)이 없이 허공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답] 이 상(相)이 없는 법은 어떤 곳에도 있지 않네.
상이 없는 법에 있어서 상은 상을 띠는 일[所相]이 없네. (2)

만약 상주하는 법(法)과 무상한 법 중에서 상(相)이 없는 법을 구한다면 얻을 수 없다. 논자가 말하는 바와 같은 이 유위와 무위가 어떻게 각각 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답한다.) 그러므로 발생과 머묾과 소멸은 유위(有爲)의 상이고, 발생과 머묾과 소멸의 없음은 무위(無爲)의 상이다. 만약 허공이 상이 없는 것이라면 허공은 있지 않다.

만약 전에는 상이 없다가 후에 상이 와서 상이 된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전에 상이 없다면 상을 띠게 하는 법[可相]이 없다. 왜 그러한가?

상(相)을 갖는 것에도 상을 갖지 않는 것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3)

등이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 뿔이 있는 것, 꼬리 끝에 털이 나 있는 것, 목덜미가 축 늘어져 있는 것, 이것들이 소의 상(相)이다. 이 상들을 떠나서 소는 있지 않다. 만약 소가 있지 않다면 이 상들이 거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상을 갖지 않는 법에서 상은 상을 띠는 일이 없다. 상을 갖는 법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상이 있기 때문이다. 물[水相]에 불의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자기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상을 갖지 않는 법에 상이 거주한다고 한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것을 무[無法]라 한다. 상을 갖는 것[有相]과 상(相)과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은 항상 서로 의존[因待]하기 때문이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나 다시 제3의 장소에서 상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송에서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하고 말한 것이다.

상[相法]이 있지 않으니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도 있지 않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상도 있지 않네. (4)

또 상이 거주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이 없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도 없다. 왜 그러한가? 상에 의존해서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있고 상을 띠게 하는 것에 의존해서 상이 있다.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상이 있지 않고 상을 띠게 하는 것도 있지 않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을 떠나 다시 사물[物]이 있지 않네. (5)

인과 연들 속에서 처음에서 끝까지 구해 보아도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의 확정을 얻을 수 없다. 이 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들은 다 있지 않다. 모든 법들은 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두 법에 포함된다. 어떤 때는 상(相)이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되고 어떤 때는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상이 된다. 예를 들어 연기가 불의 상이 되고 다시 불이 연기의 상이 되는 경우와 같다.

[문] 유(有)가 있지 않다면 무(無)는 있을 것이다.
[답] 유(有)가 없다면 어떻게 무(無)가 있겠는가?
유와 무가 이미 없으니 유와 무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6)

무릇 사물[物]이 스스로 괴멸했거나 다른 것에 의해 괴멸했다면 이를 무(無)라 한다. 무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유(有)에 의지해서 있다. 그러므로 유가 없다면 어떻게 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물의 무이겠는가?

[문] 유가 있지 않기에 무도 있지 않다. (그러나) 유와 무를 아는 자는 있을 것이다.
[답] 만약 (유와 무를) 아는 자가 있다면 유에 있거나 무에 있을 것이다. 유와 무가 이미 타파되었으므로 (유와 무를) 아는 자도 같이 타파된다.
by stream45 | 2012/02/22 15:13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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